옥수수빵과 옥수수밭: 이민자 가정의 고난과 정착의 상징
소설 나의 안토니아에서 쉬머르다 가족은 네브래스카의 척박한 땅에 정착한 후 처음으로 마주한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의 부족과 열악한 환경이었다. 특히 그들이 처음 맞이한 옥수수빵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이민자 가정이 겪는 고난과 생존을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물이 된다. 옥수수빵은 처음에는 생명선으로, 그리고 점차 불안정하고 제한적인 자원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옥수수로만 만든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던 그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이를 통해 이민자들이 처한 힘든 현실을 소설은 세밀하게 전달한다.
이와 함께 옥수수밭은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소설에서는 옥수수밭을 통해 각 계절을 묘사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독자는 이주민 가정의 고난과 성장, 그리고 이들의 적응 과정을 시각적 이미지 없이도 체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름에는 옥수수밭에서의 평화로운 장면들이 등장하고, 겨울에는 식량난과 추위 속에서의 고통이 전개된다. 계절의 변화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서, 이민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통과 이들의 내면적인 변화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이 매체로서 가진 특성 중 하나는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변화가 독자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옥수수밭은 이민자 가정의 삶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으며,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들의 고난과 발전을 시각적 요소 없이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옥수수밭의 계절적 변화는 독자에게 그들 삶의 기복을 느끼게 하고, 단순한 농작물이 아닌, 이민자들의 삶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들의 고난과 성장, 그리고 희망이 옥수수밭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옥수수밭은 단지 이주민들이 생존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땅에서의 삶이 안정되자, 옥수수밭은 그들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을 심어준다. 이는 단순히 식량을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이민자들이 타지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과정은 소설의 주제와 맞물려,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정착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서사적 장치가 된다. 옥수수밭은 그들에게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공간으로, 이들의 적응 과정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낸다.
옥수수밭은 소설이 다루고 있는 '시간'과 '공동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옥수수밭은 이민자 가정에게 단순한 밭을 넘어서, 그들의 희망과 결실을 상징하는 장소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배경 설정을 넘어, 독자에게 이민자들의 삶의 순환과 역동성을 이해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소설의 깊이를 더하고,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돕는 중요한 서사적 장치가 된다.
옥수수의 대조적 의미: 이민 초기와 현재의 삶
이민 초창기에 안토니아의 가족은 옥수수빵, 옥수수죽, 헛간에서 썼던 낡은 양철 계량통에 반죽해 시큼하고 잿빛이 나는 빵, 말린 버섯으로 밝혀진 갈색 조각들 등을 음식으로 먹었다. 그들의 상황은 매우 암울했다. 크라이에크에게 사기를 당하고, 미국에 오면서 많은 돈을 써서 매우 가난했다. 굴이라고 불리는 집에서 살며, 매일 묽은 옥수수죽같은 음식이라고 부르기 힘든 것들을 주식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에 반해 책의 후반부에서 이민을 간지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안토니아가 꾸린 가정은 갓짠 우유, 각종 잼, 매콤한 자두, 핫케이크, 사탕, 사과로 속을 채워 노릇노릇하게 요리한 거위 등을 음식으로 먹는다. 남편과 함께 열명이 넘는 아이를 낳고 나무 한그루 없던 땅을 물푸레나무숲과 가축마당과 호밀밭, 과수원 등을 갖춘 농장으로 만들고 그곳의 주인이 되었다. 많은 자식들을 모두 먹일 수 있을만큼 많은 양일뿐만 아니라 정말 맛있는 '요리'를 먹게 되었다.
두 인물의 어린시절에 짐은 넓은 옥수수밭을 소유한 조부모님이 계셨고, 풍족하게 자랐다. 반면 안토니아에게 옥수수와 옥수수밭은 먹을 것이 없어 먹거나, 좋아하는 과일을 먹지 못해 꽈리열매를 찾아다니는 장소일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재회했을 때는 짐은 도시에 살며 어린시절 살던 대평원을 그리워하고 안토니아는 자신의 삶의 터전이 되어 자신과 가족들을 지탱해주는 공간이며 자신의 열정을 쏟아붓는 곳으로,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짐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으로 보이나 도시에 살며 공허함을 느끼고, 안토니아는 육체적으로 고된 삶이지만 그녀의 열정만큼은 여전히 빛나는 모습으로 살고있다.
이처럼 소설 ‘나의 안토니아’에서 옥수수밭은 이민 초기의 모습과 현재의 삶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옥수수밭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각 인물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장소가 된다. 시점의 흐름에 따라 옥수수밭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변화하며 이는 소설의 특성인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옥수수와 인물 간의 관계: 유대와 상호작용의 매개체
소설 나의 안토니아에서 옥수수는 안토니아와 다른 캐릭터들 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옥수수 수확을 묘사하는 여름철 장면에서 안토니아와 인물들은 옥수수밭에서 함께 일하며 깊은 유대감을 쌓는다. 이 옥수수밭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을 넘어, 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서로를 지탱하는 중심적인 공간이자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서로 땀 흘리며 일하는 동안, 이들은 자연스럽게 무언의 유대를 형성하게 되며, 그 과정을 통해 각자의 삶을 더욱 이해하게 된다.
특히 쉬머르다씨와 할아버지의 만남에서 옥수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쉬머르다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한 옥수수 농사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할아버지는 이를 듣고 그녀에게 도움을 제안하며 두 가족 간에 신뢰와 우정의 유대가 형성된다. 이 장면에서 옥수수는 단순한 농작물이 아니라 서로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연결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주인공과 친구들이 함께 옥수수밭을 바라보며 농작물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들이 옥수수를 매개로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레나와 티니가 고향에서의 옥수수와 다른 작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차이점을 언급하는 장면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고향과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이 옥수수를 통해 경험을 나누고 유대를 쌓는 방식을 보여준다.
안토니아는 작품 후반부에 미혼모로서 임신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옥수수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이 선택은 그녀의 다른 친구들이 부유한 도시 생활을 누리며 성공을 이룬 상황과 대비된다. 하지만, 부유한 삶을 택한 친구들이 삶의 의미를 잃고 무의미한 일상에 갇히게 된 반면, 안토니아는 고향에서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가며 삶의 의미를 잃지 않는다. 그녀에게 옥수수는 단순한 농작물이 아니라, 고향의 토양과 연결된 뿌리 깊은 유산이며,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자립적인 상징이다.
화자에게 옥수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안토니아와 함께한 고향 생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남아 있다. 화자는 가끔 고향을 방문하며 안토니아를 만나고,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고향의 정취와 삶의 의미를 다시금 느낀다. 옥수수 밭에서 건강하고 힘차게 자라는 안토니아의 모습은 도시 생활에 젖은 화자에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며, 고향과 단절되지 않은 삶을 통해 진정한 안정감을 선사한다.
이처럼 나의 안토니아에서 옥수수는 안토니아와 주변 인물들 간의 유대와 상호작용을 나타내며, 각자의 고향과 새로운 땅에서의 삶을 연결하는 상징적 요소로 기능한다. 옥수수를 통한 경험은 화자와 안토니아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드는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하며, 그들의 유대감을 강화한다. 옥수수는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본질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며, 두 사람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고향의 이미지를 품고 살아가도록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옥수수의 상징적 의미는 작품 속에서 화자와 안토니아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며, 고향의 기억이 이들의 정체성과 삶의 본질을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함을 보여준다.
본 기고문은 한겨레신문의 '문화/책과 생각'에 게재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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